청춘일 때, 여름이면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중 하나가 ‘해변으로 가요.’가 아니었을까.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대학 때, 과 친구들과 어느 섬으로 놀러갔을 때의 그 쏟아지던 별들을 잊지 못한다.

요즘 뜨고 있는 책 중에 <시를 잊은 그대에게>(부제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에 나오는 대목을 읽으며 난 또 그 섬에서 본 별들을 떠올렸다.

이 책을 쓴 정재찬 교수는 말했다.
“별은, 밤하늘에 쓴 신의 시”라고...
밤하늘에 쓴 신의 시라는 표현에 가슴팍으로 별이 별이 들어와 앉는다.

이 글을 쓰는 오늘, 한여름밤의 산골 하늘엔 신이 쓴 시가 가득 찼다.
그대도 보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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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귀농하여 야콘을 접했을 때가 2000년 귀농한 해 가을이다.
그해 야콘을 처음 먹어보고 그 약성에 놀란 초보농사꾼은 ‘못먹어도 고’를 외쳤다.

그 당시 야콘은 막말로 누구도 야콘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못먹어도 고’라니...

남들이 다 아는 농산물을 생산해도 팔릴까 말까 하는데 거의 누구도 모르는 야콘을 농사짓는다고 하다니...

그러나 초보농사꾼의 의지는 확고했다.
약성이 좋으면 언젠가는 알려진다는 논리였다.

▲ (어린 슈퍼약도라지가 자리텃하지 않고 잘 자라주길...)

그렇게 야콘농사를 지어 처음에는 다 선물했다.
야콘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팔릴 리가 없었다.
택배비도 선불로 하여 다 선물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보내면서 착불로 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알려서 판매를 할 것인가에 온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다.
우리나라 야콘이 알려지는데 초보농사꾼의 몫도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 (노루피해를 걱정하여 망도 꼼꼼히 쳐주었다.)

우리 부부가 KBS <아침마당> 등 20여 차례의 방송에 나올 때마다 끈덕지게 야콘, 야콘즙을 알렸고, 잡지사 등에서 수도 없이 취재를 왔을 때도 야콘, 야콘을 입에 달았다.

말이 세기 전에 다시 슈퍼 약도라지로 돌아와야겠다.

초보농사꾼은 늘 어떤 농사를 지어, 어떤 가공을 하고, 어떤 마케팅을 하여, 고객에게 다가가는가를 늘 고민했다.

이제 야콘도 포화상태된지 오래다 보니 그의 고민은 더 깊어갔다.
어떤 작물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옹알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슈퍼 약도라지’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2년 전 이야기다.

그가 슈퍼 약도라지에 대해 알아보고 고민했다는 말을 듣고 적극 응원했다.
내 판단으로 그것이 가능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의 고민과 노력을 아는지라 그 정도라면 헛되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이 나의 판단을 주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슈퍼 도라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 초보농사꾼은 슈퍼 약도라지에 대해 알아보느라 새벽에서야 잠을 청하곤 했다.

그리고 슈퍼 약도라지를 이미 재배하고 있는 문경의 어느 농가를 찾아감으로써 슈퍼 약도라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슈퍼 약도라지는 기존의 재래 도라지와 비교해 생장속도가 아주 빠르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도 2~3배 많다고 한다.

▲ (꽃이 처음으로 피었다. 마음에도 보라빛 꿈이 물든다.)

뿌리도 클 뿐만 아니라 뿌리의 수도 많고 거기에 유효성분인 사포닌 함량도 아주 많다고 알려졌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슈퍼 약도라지에 도전해보기로 결정했지만 씨 값이 그 당시 종이컵 한 컵에 약 70만원 정도 였고, 재배기술 등도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초보농사꾼의 고민은 깊었다.
이런 고민을 울진농업기술센터 손용원팀장께 설명했다고 한다.

▲ (모두 모여 풀뽑아주는 모습)

손팀장님은 농업인의 말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주었고, 예천농업기술센터와 MOU체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슈퍼 약도라지로 성공을 하든 못하든간에 농업인의 말에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려고 하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등을 따사롭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울진농업기술센터에서 모종을 튼실하게 키워 주었고, 작년 봄에 금강송면의 네 농가는 슈퍼 도자지를 공동으로 심기로 했다.

슈퍼 도라지는 1년은 노지에서 재배를 하고, 2년은 포대에서 재배한다.
1년차의 노지재배를 위해 네 농가가 모여 함께 일을 했다.

▲ (작년 9월의 도라지 모습, 풀뽑아주다 잘못 뽑힌 슈퍼 약도라지)

퇴비를 뿌리고, 트렉터로 콩고물처럼 흙을 갈고, 이랑을 높여 주어야 좋은 품질의 도라지로 자라기 때문에 높다랗게 골을 지었다.

그리고 그 위에 비닐을 펴는 일이 진행되었다.
밭둑에 줄지어 서 있는 슈퍼 도라지 모종이 파릇한 꿈처럼 보였다.

하나하나 작업이 이루어질 때마다 꿈도 조금씩 자랐다.

대박이 날 거라는 확신의 꿈이 아니고,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그런 꿈 말이다.

▲ (내년을 위해 씨를 채취하는 모습)

도라지를 심고, 네 농가가 모여 풀을 뽑아주러 가보니 처음으로 도라지꽃이 피었다.
‘나 잘 자라고 있어요’라는 신호처럼 느껴져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보라색이 선명하고 투명하던지 물에 도라지꽃을 띄우면 보라색 잉크물이 풀려나올 것만 같았다.

풀을 뽑아줄 때도 네 농가가 모두 모여 함께 일했다.
9월에도 모여 풀을 뽑다가 풀과 함께 잘못 뽑혀진 도라지를 보니 이제 아기티를 벗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 (올해 끝작업으로 씨를 채취하고...)

늦은 10월 어느 날, 씨를 채취했다.
이제 슈퍼 약도라지도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옷을 입은듯 색이 변해 있었다.

기술센터에서 모종이 왔을 때는 ‘엄마, 엄마 하는 아기’였는데 이렇게 무럭무럭 자란 거였다.
네 농가가 심은 슈퍼 도라지가 겨울을 맞았다.
눈 속에서도 동상 걸리지 않고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겨울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가공에 힘쓰고 있으며, 밤에는 글을 짓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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